현대 팰리세이드 시승기: 훌륭한 패밀리 SUV
2018-12-11 교통뉴스 민준식 부장
미국 LA오토쇼에서 시끌벅적하게 출시됐던 현대의 기함 SUV 팰리세이드가 국내에서도 공개됐다. 국내 시장에 맞게 디젤엔진 모델이 시승차로 나왔다. 진정한 패밀리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현대 측의 말대로 넓고 안락하고 조용하고 쓰임새 좋았다. 짧게나마 타본 현대의 팰리세이드 이야기다.
베일을 벗은 앞모습은 LA오토쇼에서 공개됐던 사진처럼 우락부락한 근육질이다. 함께 행사장을 찾았던 동료기자는 불독의 모습이 보인다고 했다. 산타페의 다부진 스탠스에 더 험상궂어진 얼굴과 더 당당해진 풍채는 위압감을 줄만큼 컸다.
디자인을 직접 소개한 현대차 디자인 센터장 이상엽 전무는 러시아 마트료슈카 인형처럼 크기만 다르고 똑같은 디자인의 패밀리룩 대신, 용도에 따라 다른 개성을 가졌지만 비슷한 맥락의 외형을 지닌 체스 말 모양의 “현대 룩”을 만들었다며 현대차의 새로운 디자인 방향성을 설명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날카롭고 각이 졌을 것 같던 차의 모습이 많이 부드러워 보였다. 그릴에 입체적으로 들어간 메쉬 디자인도 모서리가 둥그렇게 굴려져 있었고, 우람한 크롬 그릴 역시 테두리가 부드럽게 마감되었음은 물론 은은한 무광 컬러로 고급스럽기까지 하다.
세로로 이어져 아래까지 떨어지는 전면 주간주행등(DRL)은 이 차의 앞모습을 마무리 짓는 시그니쳐다. 먼발치에서 보기만 해도 ‘팰리세이드다!’를 외칠 수 있는 독특한 디자인이다.
휠베이스 2.9미터, 차 길이 5미터(4,980mm)에 달하는 당당한 몸뚱아리가 길게 늘어져 있다. 차체 도장색을 그대로 유지하며 내려오는 C 필라는 비슷한 체구의 SUV에서 흔히 볼 수 있어 눈에 익다. 이 급에서 가장 잘 나가는 포드 익스플로러가 떠오른다.
드디어 현대 SUV도 20인치 휠이 달려 나온다. 타이어는 미쉐린 Primacy Tour AS 사계절용. 부드럽고 조용하면서도 꽤 끈적한 접지력을 가졌다고 소문난 타이어다. 이미 수소전지차 넥쏘에서도 경험해 보았던 꽤 좋았던 기억의 타이어다.
뒷모습은 앞에서 보았던 세로형 DRL과 거의 흡사한 패턴의 테일램프가 이어진다. 전면부부터 이곳까지 차체를 접어 만들어낸 라인을 따라 이어져 오다, 이 테일램프로 떨어져 꽤 통일감 있는 디자인을 완성했다. 요즘 현대차 디자이너들은 이런 식으로 앞뒤를 하나의 라인으로 연결해 통일감을 주는 기법을 많이 쓰는 것으로 보인다.
PALISADE라는 영문 레터링이 큼직하게 박힌 테일게이트를 열면 적재공간이 나온다. 꽤 넓은 3열 시트 뒤로 쓸만한 공간이 있다. 적재함 옆에 위치한 스위치를 누르면 3열 시트가 자동으로 접히며 광활한 적재공간을 만들어준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외관에 비해 실내 디자인이나 마감은 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패밀리를 위한 최적화된 공간 활용성은 운전석부터 맨 뒤 3열까지 즐길 수 있다.
맨 뒤 3열은 어린이는 편하게, 키가 큰 어른도 짧은 거리는 불편함 없이 앉을 수 있을 정도다. 특히 헤드룸도 넉넉해 공간감이 좋다. 넓은 실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파노라마 뷰 느낌도 받을 수 있다.
2열은 7인승 모델이라 개별 의자인 캡틴 체어 방식이다. 운전석만큼 편하고 몸을 감싸주는 것은 물론 따뜻한 열선과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통풍기능까지 마련돼 있다. 컵홀더를 도어 팔걸이 앞쪽에 만들어놓은 것도 특이하다. 모든 편의장비가 생각나는 위치에 잘 놓여져 있다. 220볼트 콘센트도 있다.
1열은 의외로 낮은 포지션이지만 의자 높이를 많이 높일 수 있다. 키가 작은 엄마도 쉽게 몰 수 있다는 뜻이다. 의자 포지션을 올리면 넓은 앞 유리 밖으로 항공모함 갑판 처럼 본닛이 펼쳐져 있다. 차의 덩치가 국내 최대급이지만 차의 끝 모서리를 가늠할 수 있어 운전이 불편하지는 않다.
또한 전륜구동 기반임에도 앞바퀴가 많이 꺾여 회전반경이 크지 않다. 회전반경이 작으면 서울시내 골목길 같은 좁은 길에서도 운전하기 편하고 주차도 편하다. 스티어링도 가벼워 여성운전자들도 부담이 없을 것이다.
팰리세이드의 또 다른 강점은 소음진동 억제대책(NVH)이다. 4기통 디젤엔진의 카랑카랑한 소음은 저 멀리 묻혀서 거의 들리지 않았다. 가속페달을 깊이 밟아도 디젤엔진 특유의 중저음만 먼발치에서 들릴 뿐 소음진동 스트레스는 적었다. 심지어 정차 시 진동도 크지 않았다.
노면소음 및 외부소음 억제력도 탁월했다. 저속보터 고속까지 바퀴 구르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타이어도 한 몫 했겠지만 차체의 방음 방진 대책이 훌륭한 것으로 보인다. 앞 유리와 1열 유리는 2중 차음유리였다.
시승차는 2.2 디젤엔진과 험로주행 기능을 더한 새로운 HTRAC 4륜구동 시스템이 조합된 풀옵션 모델이다. 제원상 공차중량은 2,030kg으로 덩치에 비해 가볍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출시된 SUV중 가장 큰 몸집을 자랑하면서도 무게는 오히려 가볍다. 3.8 가솔린 엔진에 전륜구동이 들어간 모델은 무게가 1,870kg에 불과하다.
덩치에 비해 가볍다고는 하지만 200마력을 조금 넘는 4기통 디젤엔진이 끌기에는 가볍지 않다. 초반 가속이나 반응성은 나쁘지 않지만 힘이 넘치는 몸놀림은 아니다. 게다가 엔진과 변속기의 반응과 동작속도도 성능보다는 부드러움에 맞췄기 때문에 날렵한 움직임은 기대하기 어렵다.
투싼이나 싼타페에 들어간 유닛과 거의 같다는 전륜 8단 변속기는 상당히 느긋하고 부드러워 예전 베라크루즈를 탔을 때의 느낌마저 들었다. 투싼의 8단 변속기는 듀얼클러치를 연상시킬 만큼 빠른 변속과 반응성을 보였는데 이 녀석은 많이 느긋하고 부드러웠다.
요즘 빠릿빠릿해지고 유격이 적어지고 있던 현대차의 전동 스티어링 시스템도 여기서는 옛모습이 보였다. 좋게 말하면 부드럽고 나쁘게 말하면 둔하고 느렸다. 요즘 타봤던 현대기아차의 그것에 비해 조금 더 돌려야 원하는 만큼 회전한다.
서스펜션도 부드럽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린다. 스트로크가 길고 댐핑압이 강하지 않아 시종일관 안락하고 여유로운 거동을 보였다. 진동을 잘 흡수함은 물론 진동에 대처하는 차체의 상하 움직임이 느릿하게 억제돼 있어 작은 배가 아닌 커다란 크루즈 여객선을 타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렁거림은 잘 억제되어 있어 승차감이 좋았다.
그러나 긴 스트로크에 부드러운 세팅의 서스펜션은 운전재미를 깎아먹는다. 느리고 부드러운 스티어링도 한 몫 한다. 이 불변의 진리가 팰리세이드에도 적용된다. 정말 편안하고 안정적인 거동성을 꽤 빠른 속도에서도 유지했지만 운전재미, 즉 펀 팩터(Fun Factor)가 부족했다. 가속페달, 스티어링, 브레이크가 부드럽지만 한 발 늦은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승차감과 한 발 늦은 듯한 핸들링은 오프로드 주행에서 빛을 발했다. 거친 노면을 헤치고 나갈 때 핸들(스티어링휠)이 이리저리 튀지 않으면서 안정감을 유지했고, 돌처럼 단단한 차체는 잡소리 하나 없이 안정적으로 울둥불퉁한 길 위를 달렸다. 험로모드가 포함된 4륜구동 시스템은 이 고급스러운 패밀리 SUV가 마치 정통 오프로드 SUV가 4륜 로우기어를 넣고 달리는 것처럼 안정적으로 모래를 박차고 나가게 했다.
고속도로나 포장도로 주행성능은 나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부드러운 세팅임에도 불구하고 고속 코너링에서 잘 버텼고 급격하게 차선을 바꾸는 움직임을 해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주행성능 자체는 느껴지는 것보다 훨씬 좋았다. 갑자기 ‘미쉐린’이라는 타이어 브랜드가 뇌리를 스쳤다.
의외로 날렵했던 코너링 성능의 비결 하나가 또 있다. 오프로드에서 실력을 보여줬던 HTRAC 시스템이다. 이 똑똑한 4륜구동 시스템이 고속으로 코너를 돌 때에도 구동력을 적절해 배분해 안정감이 있었다는 것이다. 전륜구동 기반 차량 특유의 앞바퀴가 접지력을 잃으며 회전반경이 커지는 ‘언더스티어’ 현상이 잘 억제되어 있었다. 거기에 훌륭한 타이어가 더해진 것이다.
서스펜션, 스티어링, 브레이크 등 하체 세팅이 무르고 부드러운 컴포트 성향이라도 타이어 접지력이 확보되어 있으면 주행성능은 높다는 말을 늘 들었다. 게다가 차체강성이 높으면 충격을 받아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오늘 타본 팰리세이드가 딱 이런 차다.
운전하는 내내 편안하고 부드러운 승차감을 즐기면서도 모자랐던 부분이 운전재미였다. 그런데 동승자들은 모두 차가 너무 좋다고 난리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편안한 승차감이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운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조금 더 날렵한 반응을 보여줬어도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3,475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대중을 놀라게 했던 팰리세이드 기본형 모델에, 비싼 유로6 디젤엔진과 더 비싼 HTRAC 4륜구동 시스템, 그리고 훨씬 더 비싼 각종 편의장비를 더하면 시승차처럼 4,904만 원이라는 가격표를 받는다. 거기에 알콘(Alcon) 캘리퍼 고성능 브레이크와 디자인 휠이 들어간 패키지는 275만 원이 추가된다.
갑자기 가볍고 연비도 꽤 잘 나오면서(9.6km/L) 6기통 엔진을 장착한 가솔린 모델이 더 궁금해졌다. 하이브리드 엔진에 쓰이는 앳킨슨 사이클을 적용해 출력은 약간 손해를 봤지만 연비를 얻었다고 한다. 295마력의 넉넉한 출력에 부드러운 6기통 가솔린 엔진의 회전질감이 잠깐 맛보았던 이 차의 성격에 더 맞아 보인다.
팰리세이드의 출현으로 국내 대형 SUV 시장에 큰 변동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형 SUV 뿐만 아니라 미니밴 시장을 포함한 대형 RV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7명 이상이 제대로 편하게 탈 수 있는 차가 국내에서는 미니밴 빼고는 처음 나왔기 때문이다.
승합차 기준 맞춘다고 말도 안 되는 4열 시트를 구겨 넣은 국산 9-11인승 미니밴보다 팰리세이드의 7-8인승 배치가 훨씬 쓸모 있고 편하다. 4명의 어른이 골프백 4개와 옷가방을 여유 있게 싣고 편안하게 골프를 치고 갈 때, 세 명의 아이를 태운 부모가 편하게 나들이를 갈 때도 안성맞춤인 이 차의 실용성은 큰 차 좋아하는 대한민국 자동차 소비문화와도 꽤 잘 어울린다.
함께 동승한 기자는 ‘첫인상은 핏불(투견) 같았는데 알고 보니 골든리트리버 같은 착한 반려견 같다’고 했다. 아주 와 닿는 비유다. 남성적이고 우람한 외관과는 달리 여성적이면서 부드러운 인테리어와 더 부드러운 주행질감을 가졌다. 이 차는 가족을 챙겨주는 아빠를 위한 진정한 패밀리카(SUV)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