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승차감과 풍부한 옵션의 K7 하이브리드
친환경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토요타가 원조다. 수많은 원천기술을 개발했고, 프리우스부터 시작한 내연기관 엔진과 전기모터를 더하는 파워트레인은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후발주자인 현대기아차는 기존 내연기관 엔진과 변속기는 크게 건들지 않으면서 전기모터를 중간에 끼워 넣는 방식의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개발했다.
하이브리드의 최고봉이라도 여겨지는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이 적용된 플래그십 세단 아발론과 기아자동차의 전륜구동 플래그십인 K7 하이브리드를 맞붙여 보았다.
도전자인 기아 K7하이브리드는 2.4리터 엔진과 모터, 6단 자동변속기의 조합이다. 압축 행정에서 흡기밸브를 일부 열어놓아 압축비를 줄인 앳킨슨 사이클을 적용한 4기통 엔진은 흡기관에 연료를 분사하는 간접분사 방식을 쓰고 있으며, 159마력의 힘을 낸다. 변속기는 일반 오토매틱 변속기와 똑같은 유성기어 방식의 6단 변속기다.
기아자동차의 하이브리드는 특이하게 모터를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 넣었다. 변속기 오일에 담긴 여러 장의 다판클러치 패키지가 엔진과 모터를 이어줬다 떼어줬다 한다. 엔진과 모터가 붙어 있으면 충전과 발진을 동시에 하고, 떨어져 있으면 전기로만 주행한다.
51.6마력을 내는 모터는 159마력을 내는 엔진과 합쳐져 196마력의 합산출력을 낸다. 엔진과 모터가 직접 연결돼 있기 때문에 각자의 힘이 고스란히 합쳐진다.
원조인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훨씬 복잡하다. 일단 기아차의 다단(6단)기어 방식의 변속기는 없다. 엔진, 엔진에 연결된 모터, 그리고 구동모터로 구성되며, 이들 사이에 파워 스플릿 디바이스라는 1단짜리 유성기어 세트가 들어간다.
이 파워 스플릿 디바이스가 모터를 돌릴 전기를 생산하거나, 엔진과 모터가 힘을 합쳐 최대출력을 내거나, 엔진을 끄고 모터만으로 구동되도록 조절한다. 이 과정이 무단변속기와 내연기관이 작동하는 것과 비슷해 토요타는 이를 ‘e-CVT'라고 부른다. 하지만 벨트로 연결된 풀리가 직경이 바뀌면서 기어비가 바뀌는 실질적인 변속기는 없다.
178마력을 내는 2.5리터 엔진은 직분사와 간접분사를 동시에 쓰는 연료분사 시스템과 앳킨슨 사이클을 적용했다. 두 개의 모터가 내는 출력은 120마력에 달한다. 그런데 이들이 직접 연결돼 힘을 보태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합산출력은 298마력이 아닌 218마력이다.
크기는 비슷하지만 사뭇 다른 두 대의 하이브리드 차량을 함께 시승해보았다.
겉모습과 만듦새: 가격대비 월등한 경쟁력을 자랑하는 국산차
가격대까지 비슷한 두 하이브리드 차량을 눈으로 비교해보면 차이가 크다. 만듦새가 다르다. 전체적으로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은 기아 K7이 더 낫다. 가죽시트와 실내 마감재의 질감, 컬러가 월등하다. 게다가 디스플레이, 편의성, 오디오 성능 등도 월등하다.
일반인들이 자주 볼 수 없는 하체도 겉보기에는 기아차가 더 나아보였다. 일단 가볍고 부식에 강하며 고급차에 많이 쓰인다는 알루미늄 하체부품이 K7에 더 많이 쓰였다. 너클 캐리어, 전륜 로우암 등에 알루미늄을 쓴 K7과는 달리 아발론은 주철재질이다.
그런데 방청처리나 내구성을 위한 배려는 토요타가 우수했다. 철판을 잇는 부위에 쓰인 실리콘 방청재도 토요타가 더 나아보였고, 특히 하부 커버로 덮힌 철판에도 언더코팅이 돼있었다. 그리고 보라색 방청볼트가 곳곳에 쓰였다. 시간이 지나도 녹슬지 않아 탈거나 재장착이 쉬울 것이다.
편의장비, 주행보조 기능: 기술의 일본차를 무색하게 한 K7
국내에서 가성비로 이길 수입브랜드는 없다. 크렐 오디오의 스피커 12개에서 나오는 입체적인 음향은 6개의 종이스피커에서 나오는 아발론의 오디오 사운드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내비게이션 스크린의 해상도는 토요타의 경우 10년 전 모델을 보는 듯 했다.
차선을 유지하면서 달리는 것은 물론, 정차했다 다시 출발할 수도 있는 K7의 주행보조시스템은 사실상 자율주행이 가능했다. 아발론의 주행보조 시스템은 차선을 밟으면 안으로 넣어주는 기능과 앞 차가 끼어들거나 속도를 줄이면 스스로 줄여주는 기능이 전부다.
요즘은 당연한 편의장비인 통풍시트도 K7에서만 누릴 수 있다. 프라임 나파가죽의 K7은 럭셔리 브랜드의 시트에 손색이 없었지만 아발론의 가죽시트는 인조가죽 느낌이 났다. 마감재도 아발론의 실내는 차급이 낮아 보일 정도로 저렴한 소재가 많이 쓰였다.
토요타코리아가 가격대를 낮추기 위해 취한 조치로 보인다. 일단 국내 수입 사양이 미국 현지 최고급 사양이 아니라고 들었다. 그리고 미국시장에서 이 급의 차량에 적용되는 마감 수준이 동급 국산차보다 낮은 것이 사실이다. 이 부문에서는 K7이 큰 우위를 점했다.
일상주행 느낌: 두 차 모두 승차감과 정숙성 우수, 그러나 아발론의 압도적인 승차감!
K7과 아발론은 거의 똑같은 서스펜션 구조를 적용했다. 전륜 맥퍼슨 스트럿, 후륜 멀티링크 방식이다. 하체 부품은 K7이 더 좋은 것을 썼다. 그런데 승차감은 아발론이 월등했다. 댐퍼와 스트럿 조합, 그리고 가장 중요한 플랫폼의 우위가 엿보인다.
토요타가 자랑하는 TNGA 플랫폼은 그 이름값을 했다. 눈으로 보기에는 덜 화려해 보였지만 낮은 무게중심과 강건한 차체, 그리고 기가 막힌 스프링과 댐퍼의 조합으로 ‘예술적’인 승차감을 만들어냈다.
두 차 모두 부드러운 승차감을 자랑한다. 서스펜션의 스트로크도 무척 길다. 바퀴가 아래위로 많이 움직인다는 뜻이다. 그런데 바퀴의 움직임을 아발론이 훨씬 잘 다룬다.
같은 과속방지턱을 같은 속도로 넘을 때, 아발론의 앞바퀴는 K7보다 덜 눌렸다. 그리고 요철을 넘을 때의 움직임이 느렸다. 서스펜션이 덜 눌리고 움직임이 느리면 안에서 느끼는 안락감은 좋아진다. K7은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거칠었고, 앞으로 고꾸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K7도 나쁜 승차감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발론이 워낙 뛰어났다.
노면소음은 K7이 더 조용했다. 그런데 속도를 높이면 그 차이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아발론의 경우 노면의 상태에 따른 소음의 편차가 적었다. 외부소음을 막는 실력은 사방을 이중접합 유리로 덮은 K7이 당연히 우수했다.
엔진소음은 낮은 rpm에서는 K7이 부드럽고 조용했다. 아발론은 저속에서는 꽤나 거친 느낌을 줬는데, 속도가 올라가도 그다지 거칠어지지 않고 그 톤을 유지했다. 반면 K7은 rpm이 올라가면 꽤나 거칠어졌다.
시내주행 질감은 내연기관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선호하는 기자에겐 K7이 맘에 들었다. 6단으로 나뉜 변속기는 빠르지는 않지만 부드럽게 기어를 바꿨고, 토크컨버터가 없어 헛돌지 않기 때문에 직결감이 좋았다. 아발론은 음식배달 박스를 장착한 배달 스쿠터에서 나는 소리가 나면서 가속했다.
두 차 모두 충분히 조용하고 편안하면서 일상 영역에서의 파워트레인 반응이 자연스러웠지만, 뛰어난 승차감을 자랑하는 아발론이 주행느낌은 더 나았다.
와인딩 주행: 물만난 고기처럼 내달리는 아발론
아발론의 e-CVT는 스쿠터가 풀가속하는 반응이지만 빠르고 정직했다. 20여 마력에 달하는 힘의 우위가 빠르게 달릴 때는 플러스가 됐다. 갑자기 rpm이 치솟으며 헛도는 느낌을 계속 줬지만 어쨌든 차는 빠르게 튀어나갔다.
K7으로 와인딩 주행을 하니 느린 변속이 발목을 잡았다. 기어를 부드럽게 바꾸느라 변속 속도가 느렸는데, 이 바람에 급하게 가고 싶을 때는 인내심이 필요해진다. 코너를 진입해 속도를 줄였다가 재가속 할 때 기어를 찾아 들어가느라 허둥댔고, 시간을 많이 까먹었다. 운전재미를 많이 깎아먹은 것이다.
일상주행에서 느꼈던 서스펜션 세팅의 차이가 와인딩 주행에선 저 크게 다가왔다. K7은 와인딩구간 내내 불안한 거동을 보이며 운전을 어렵게 했다. 반면 아발론은 여유있는 몸동작을 보이면서 운전을 쉽게 만들었다.
같은 구간을 달리면서 아발론을 훨씬 쉽게 빨리 몰 수 있었다. 같은 구간 주파시간이 15초 이상 빨랐다. 100미터 이상 차이가 난 것이다.
기름을 많이 쓰는 와인딩 구간에서 속도 차이가 났을까, 시승기간 내내 기록한 연비는 K7이 더 우수했다. 두 차 모두 마지막 날 와인딩 주행을 하기 전까지는 리터당 16km대를 유지했으나, 와인딩 주행 후 K7은 리터당 14km대, 아발론은 12km대로 떨어졌다.
그래서 어떤 차가 더 나은 차?
두 대의 비슷한 차를 타면서 서로의 장점이 극명하게 다른 요소에서 드러난 것이 재미있다. 압도적인 편의장비와 주행보조, 실내마감 등 상품성이 좋은 K7. 자동차의 기본기인 안락한 승차감과 뛰어난 주행성능을 갖춘 아발론.
계산기 두드려보고 쇼룸에서 차를 구경한 후 짧은 거리를 시승해보면 K7을 안 고를 수 없다. 그런데 조금만 오래 차를 타보면 아발론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기가 막힌 승차감과 뛰어난 주행성능은 부럽다. 세계에서 차를 가장 잘 만드는 회사 중 하나인 토요타의 저력은 여기서 나온다.
심심풀이로 시승 후에 항목을 정리해 별점을 매겨보았다. 정확한 기준을 삼아 공평하게 평가했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점수는 같았다. K7은 모자라는 주행성능이 아쉬웠고, 아발론은 미흡한 편의장비가 아쉬웠다.
토요타는 눈높이가 높아질 대로 높아진 국내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상품 구성이 필요해 보인다. 가격 인상폭은 최소화 하되, 통풍시트, 차선유지 반자율주행, 오디오 등 편의장비의 보강이 필요하다. 힘 줄 곳과 뺄 곳을 잘 아는 토요타는 이를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기아차는 같은 플랫폼의 사실상 같은 차 그랜저의 서스펜션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같은 플랫폼임에도 그랜저 하이브리드의 주행감이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그랜저는 상품성도 훨씬 뛰어났다. 이 비교테스트에 그랜저 하이브리드가 등판했다면 일방적인 게임이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