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와 기아의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인기를 끌고 있다. 현대차 아반떼, 쏘나타, 그랜저, 코나, 투싼, 싼타페에 탑재되고 있고, 기아 K5, K8, 니로, 스포티지, 쏘렌토, 카니발에도 탑재되는 등 거의 전 라인업에 하이브리드를 선택할 수 있다.
올해 현대차와 기아는 하이브리드 차량을 30만대 이상 판매해 지난해보다 40% 증가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전체 판매량의 21%에 달한다. 그랜저, 쏘렌토, 싼타페 등은 하이브리드 모델 판매비중이 절반이 넘는다. 신차 대기기간이 정상화됐지만, 하이브리드 모델은 1년 이상 기다려야 차를 받을 수 있다.
수출도 잘 되고 있다. 올 11월까지 해외시장에서 총 51만 3천대가 팔리면서 전년 대비 32% 성장했다. 전기차 시장에서 주목을 받은 데다 하이브리드 시장에서도 급성장하면서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3위를 수성할 수 있었던 비결로 주목받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10년 이상 꾸준히 발전시켜 온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기반으로 당분간 이어질 글로벌 친환경차 경쟁에서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대차와 기아가 하이브리드 경쟁력을 확보한 비결은 무엇일까? 회사 측은 엔진과 변속기 독자개발을 통해 쌓은 기계공학 노하우가 독자 하이브리드 시스템 개발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내연기관 엔진과 전기모터가 힘을 합쳐 차량을 끌고 나간다. 두 가지의 동력원을 합쳐야 하기 때문에 복잡한 기술과 제어가 필요하다.
그러나 하이브리드 기술은 꽤 오래 전부터 쓰였다. 바로 디젤 기관차다. 디젤 기관차는 디젤엔진이 발전기를 돌려 만들어낸 전기로 모터를 돌려 동력을 만든다. 전기모터는 복잡한 변속기가 필요 없어 크고 무거운 차체를 끌고 가기에 적합하다.
이 기술을 처음 하이브리드에 접목시킨 제조사가 일본의 토요타와 혼다다. 이들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보면 엔진이 전기를 만들어 배터리를 충전하고, 힘이 센 전기모터가 배터리 전기를 사용해 힘을 낸다. 단 엔진의 힘이 남기 때문에, 남는 힘을 구동계로 전달하는 기어 시스템이 있다는 점이 디젤 기관차와 다르다. 업계는 이를 직병렬식 하이브리드 시스템이라 부른다.
현대차·기아는 2011년 병렬형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내연기관 엔진과 변속기는 그대로 둔 채, 변속기와 엔진 사이에 전기모터를 탑재한 시스템이다. 엔진과 전기모터 사이에 동력을 연결했다 끊어주는 클러치가 있다.
이 시스템은 클러치가 연결돼 있으면 엔진이 힘을 내고 모터가 힘을 보태 차를 끌고 간다. 강력한 힘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것. 클러치가 단절되면 모터가 트랜스미션에 연결돼 혼자 차를 끌고 갈 수도 있다. 전기모터는 힘을 보태면서 엔진의 힘과 효율을 높이기도 하고, 혼자 돌아가면서 효율을 더욱 높인다.
이 시스템은 현대 쏘나타와 기아 K5에 처음 탑재되면서 화제를 모았다. 이후 이런 병렬식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유럽 럭셔리 메이커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에도 탑재되면서 적용이 확대됐다.
독일 ZF사는 자사의 8단 변속기에 전기모터를 내장한 범용제품을 내놓아 완성차 메이커에 납품하고 있다. 직병렬 하이브리드의 원조인 토요타는 자사의 고성능 세단에 병렬식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탑재해 출시했다.
현대차·기아 병렬식 하이브리드의 특징은 연비 지향형이라는 점이다. 연비의 끝판왕이라고 알려진 토요타의 시스템에 근접한 뛰어난 연비를 자랑한다. 또한, 기존 내연기관 엔진 차량의 자연스러운 주행감을 그대로 갖고 있다는 장점도 있다. 똑같이 기어 변속을 하는 익숙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2019년에는 엔진 자체의 성능과 효율을 끌어올린 CVVD 엔진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면서 경쟁력을 확보했다. CVVD 엔진은 하이브리드 엔진에 필수인 앳킨슨 사이클을 자유자재로 구현할 수 있는 신기술을 탑재했다.
하이브리드 엔진은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앳킨슨 사이클을 쓴다. 이는 피스톤이 실린더를 압축할 때 흡기밸브를 열어둠으로써 저항을 줄이는 기술이다. 주사기 끝을 막고 누르면 뻑뻑한데, 막지 않고 누르면 잘 눌리는 원리다. 이렇게 하면 엔진의 효율이 높아진다.
다만 이렇게 하면 엔진의 출력이 떨어진다. 공기를 덜 압축하기 때문에 배기량이 적어지는 효과를 낸다. 떨어진 출력은 전기모터가 보조한다.
CVVD 엔진은 효율이 필요할 때 압축행정에서 흡기밸브를 일부 여는 앳킨슨 사이클을 썼다가, 힘이 필요할 때는 일반 4행정 엔진처럼 흡기밸브를 닫는 오토 사이클을 자유자재로 구현할 수 있는 신기술이다. 편심축을 이용해 흡기밸브를 열어주는 캠축의 회전을 조절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결실을 맺었다.
이 기술로써 엔진 자체의 힘과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터보차저와 결합해 180마력의 출력을 내는 엔진과 60~75마력을 내는 전기모터가 조합돼 230~245마력의 시스템 출력을 내면서도 리터당 20km에 근접하는 주행연비를 자랑한다.
현대차·기아는 1991년 첫 독자개발 엔진인 알파엔진을 시작으로, 2009년 6단 자동변속기를 개발하는 등 내연기관의 효율 향상을 위한 개발에 전념했다. 6단변속기에 전기모터를 내장하는 아이디어도 일본 메이커들이 선점한 하이브리드 특허를 회피하면서 비슷한 효율을 달성할 수 있는 기술개발의 원동력이 됐다.
이후에도 기술개발은 계속됐다.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출력은 낮지만 효율이 높은 1.6 앳킨슨 사이클 엔진과 6단 건식 DCT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아반떼, 코나, 니로 등 컴팩트 모델에 장착했고, 앞서 언급한 1.6 터보 CVVD엔진을 쓴 고출력 하이브리드 시스템도 개발했다.
또한 연비를 향상시키기 위해 첨단 소재 기술을 활용,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중량을 저감하는 한편, 회생제동 개입 수준을 조절하는 패들 시프트(paddle shift)를 적용하기도 했다.
더욱이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도 직접 개발했다. 지난 8월 출시한 싼타페 하이브리드에는 직접 개발한 하이브리드 전용 배터리가 처음으로 탑재됐다.
전기모터를 이용해 가감속을 조절함으로써 승차감과 주행안정성을 확보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이 기술은 1.6 터보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차량에 탑재된다.
최근 전기차 시장이 주춤하면서 하이브리드카가 주목을 받고 있다. 성능과 연비가 뛰어나 소비자들이 좋아하고, 제조사 입장에서도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어 환경규제를 맞추는 데 유리하다. 결국 하이브리드의 강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에 맞춰 현대차·기아도 파워트레인 라인업 확장에 나선다. 성능을 더욱 높인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 개발에 나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회사 측은 2025년 출시를 목표로 추진 중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고성능 엔진과 결합될 예정이며, 연비도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2.5 터보 엔진과 모터의 결합을 점친다. 하이브리드는 없다고 밝혔던 제네시스 모델에도 적용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라인업이 확장되면 현대차·기아는 140마력대에서 300마력대를 아우르는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의 풀 라입업을 보유하게 된다. 완전 전동화로 전환되기 전에 탄소배출을 최소화한 다양한 파워트레인을 갖추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