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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기자의 뇌피셜] 포드 V 페라리는 실화였다...모터스포츠에 진심이었던 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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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기자의 뇌피셜] 포드 V 페라리는 실화였다...모터스포츠에 진심이었던 포드
  • 교통뉴스 민준식 부장
  • 승인 2024.02.01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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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포드와 모터스포츠, 그리고 머스탱의 탄생
포드는 모터스포츠를 기반으로 성장한 회사다. 사진=포드
포드는 20세기 초 모터스포츠를 기반으로 성장한 회사다. 사진=포드

포드모터컴퍼니의 창립자 헨리 포드는 모델 T를 내세워 세계 최초로 자동차의 대량생산에 성공함으로써 누구나 자동차를 가질 수 있게 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헨리 포드는 모터스포츠를 먼저 시작했다. 그는 1901년 세계 스윕스테이크 챔피언십(World Championship Sweepstakes)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레이싱과 깊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가장 빠른 차를 만들어 달림으로써 자동차 산업 태동기에 큰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고, 헨리 포드는 그 투자금을 바탕으로 자동차 왕국을 세우게 된다.

포드 레이싱 헤리티지의 시작, 999

999를 직접 운전하는 헨리 포드. 사진=포드

챔피언십 이후 헨리 포드는 자전거 레이싱 챔피언으로 활약하고 있던 톰 쿠퍼(Tom Cooper)와 함께 애로우(Arrow)와 999라는 경주용 자동차를 개발한다. 999의 이름은 당시 뉴욕과 시카고 사이를 운행했던 고속철도, 뉴욕 센트럴 열차에서 차용했다.

999는 스티어링휠도 없는 단순한 형태로 스피드에만 초점을 맞춘 모델이었고, 운전석이 엔진 뒤에 있는 프레임에 장착되어 있었다. 조향은 레버로만 할 수 있었고, 오로지 똑바로 달리면서 속도를 내는 데에 모든 것이 맞춰진 차였다.

999의 총 길이는 3미터에 가까웠고, 기존 미국에서 활동하던 경주용 자동차보다 휠베이스와 트레드의 크기 역시 컸다. 18.5L의 4기통 엔진은 70마력의 출력을 자랑했고, 그 크기 때문에 999는 바퀴가 달린 대형 엔진처럼 보였다고 전해진다.

1902년 바니 올드필드(Barney Oldfield)가 미시간 주 그로스 포인트 경기장에서 999를 몰고 미국 경주 기록을 세운 덕분에 999는 이미 세계 최고 경주용 자동차 반열에 올라 있었다. 그 차를 헨리 포드가 디트로이트 세인트클레어 호수 위에서 달리며 시속 90마일을 돌파해 신기록을 세웠다.

헨리 포드의 시속 91.37마일(약 147km) 달성 기록은 단 2주 동안만 유지되었지만, 이 사실이 포드 모터 컴퍼니의 광고에 활용되면서 회사의 성장에 기여하게 된다. 헨리 포드는 회사 창립 초기 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전략으로 모터스포츠를 십분 활용했다.

그 후 막대한 투자금과 판매수익을 바탕으로 자동차를 싸게 많이 만들 수 있는 기술과 시설을 구축해 포드모터컴퍼니는 자동차의 대중화를 이끌게 된다. 회사가 커진 반면 포드의 이미지는 모터스포츠와는 멀어지게 된다.

싸고 재미없는 차만 만든다는 이미지가 각인된 포드의 옛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헨리 포드의 아들인 헨리 포드 2세는 당시 스포츠카와 레이싱의 강자였던 이탈리아의 페라리를 인수하려고 한다. 돈으로 경쟁사를 사려고 했으나, 자존심 높은 엔초 페라리는 이를 단칼에 거절하고 조롱까지 한다.

절치부심한 포드 주니어는 모터스포츠에 뛰어들기로 한다. 이 부분이 영화 푸드 V 페라리의 시작이다. 미국의 스포츠카 엔지니어 캐롤 셸비와의 인연도 이때 시작된다.

전설의 시작, 머스탱 탄생

1967년형 머스탱(1세대). 사진=포드
1967년형 머스탱(1세대). 사진=포드

이와는 별도로 포드는 스포츠카 헤리티지를 되살리기 위해 1964년 뉴욕 월드페어(New York World’s Fair)에서 머스탱을 선보인다. 달리는 야생마를 뜻하는 머스탱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 사회적 풍조를 반영해 새로운 세대의 열망과 자유로움을 강조한 디자인과 이미지 메이킹이 효과를 본 것이다.

이후 머스탱은 고성능차로서의 명성뿐만 아니라 영화, 뮤직비디오, 광고 등 대중문화에 빈번히 나타나며 자동차를 넘어 문화의 일부로 성장했다. 포드 머스탱은 탄생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이콘으로 각광받고 있다.

1세대 머스탱은 한 시대를 풍미한 문화적인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2000년대 초반, 미 해군은 모병 광고에서 싸워서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3가지를 나열했는데, 그중에는 비치 보이스, 애플파이, 그리고 1967년식 머스탱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이 차의 역사와 매력은 상징적이었다.

1세대 머스탱의 파생모델인 1971 포드 머스탱 마크 1은 제임스 본드 시리즈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에서 ‘본드카’로 데뷔한다. 우아한 스타일과 강력한 성능은 제임스 본드의 세련된 드라이빙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캐롤 셸비와 포드의 인연으로 머스탱에는 셸비 뱃지도 붙게 된다. 머스탱의 최상위급 모델에 셸비의 엔지니어링이 적용되면서 더욱 특별함을 더했다. 한국인 엔지니어인 전명준(John Chun)이 이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점도 특별하다.

1965년, 1세대 머스탱 기반의 스페셜 카 셸비 GT350과, 그 모델 탄생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16년 6세대 머스탱에서 퍼포먼스형 트림으로 판매한 머스탱 셸비 GT350은 포드가 재건한 레이싱 헤리티지의 상징이다.

6세대 머스탱 기반의 셰비 GT350. 사진=포드
6세대 머스탱 기반의 셸비 GT350. 사진=포드

머스탱 셸비 GT350은 리틀믹스의 "파워" 뮤직비디오에서 머스탱의 카리스마와 강렬한 음악과의 조화를 통해 시선을 사로잡았다. 뮤직비디오에서의 머스탱은 강인한 이미지와 현란한 스타일로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국내에서도 머스탱은 자주 스크린에 등장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Good Bye’ 뮤직비디오, 영화 ‘베테랑’ (2015), ‘불한당’ (2017) 등 다양한 출연을 통해 문화적 아이콘으로서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1964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머스탱은 ‘66 머스탱’이라는 고유명사로 전 세계의 카매니아들에게 각인됐고,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자동차 문화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포드코리아는 7세대 완전변경 머스탱을 공개하고 국내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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